들어가며
4월 15일, 백준이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다.
2010년 3월에 시작해 2026년 4월 28일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장장 16년이다.

막연히 개발자가 되고 싶긴 한데 뭘 해야 하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을 때, 일단 코딩 테스트는 붙어야 한다니까 백준을 시작했었다. 백준의 첫번째 문제는 정수 A, B 를 입력 받고 그 합을 출력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초록색 글씨의 “맞았습니다!!”. 맞았다는 별거 아닌 그 말이 그 때는 얼마나 뿌듯했던지. 정답을 찾아 헤매던 어렸던 나에게는 그 말의 의미가 왠지 모를 위안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한두 번씩 백준에서 알고리즘 문제를 풀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그 습관에 영향을 준 사건도 있었다. 2022년 가을, 학교에서 계산기하학 수업을 들었는데 구재현(koosaga)님과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분이다. 백준 프로필로만 보던 사람이 같은 강의실에 있었다. 같은 학교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분을 봤다는 것 자체가 되게 묘한 순간이었다. 이 글의 주제와 별개로 약간 웃겼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해당 수업 중 발표 Q&A 세션에서 다른 수강생이 "그건 이미 있는 이론 아닌가요?"라고 약간 까칠하게 물었는데, 구재현님의 대답은 이랬다. "제가 여기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발표할 거였으면 이미 논문 쓰고 교수 됐겠죠?" 교수님을 포함해서 강의실의 모두가 크게 웃었다. 그 능청스러움이 굉장히 유쾌하면서도, 그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되게 멋있었다. 어쨌든 그 학기가 끝나고 알고리즘 문제를 한동안 꾸준히 풀었다.
숫자로 남긴 것들
백준 프로필에 남긴 숫자들이다.

백준 기준으로는 등수 896위, 맞은 문제 1609개, AC 2668회, WA 1107회다.

solved.ac 기준으로는 Platinum IV 1819점, CLASS 5 달성, 전체 #4913으로 상위 2.62%다. 최장 스트릭은 859일이다.
받지 못한 뱃지
언젠가 다이아, 루비까지 가보고 싶었다. 진짜로 PS(Problem Solving)를 끝까지 파봐서 Codeforces 같은 CP(Competitive Programming)까지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뤄졌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취업 후 실무를 하면서, 어려운 문제에 시간을 쏟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알고리즘 문제 풀이가 공부가 되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쉬운 문제를 골라서 하나 풀고 스트릭을 이어가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레이팅도 어느 순간부터 정체됐다.

그래도 한 가지는 지키려고 했다. 문제를 풀면 맞힌 사람 탭의 첫 페이지 안에 들도록 했다. 최대한 빠르고 가볍고 짧게 해결하려고 했다. 쉬운 문제라도 그냥 아무렇게나 풀지는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작은 타협이었다.
다이아와 루비는 영영 못 가게 됐다. 그게 조금 아쉽다.
solved.ac에서는 매일 문제를 풀면 GitHub처럼 잔디가 남는다. 사실 목표가 하나 있었다. 1,024일 연속 스트릭을 달성하면 받을 수 있는 새싹 10단계 뱃지다. 결국 내 스트릭은 859일에서 새싹 9단계로 마무리됐다.


조금 더 일찍 PS를 시작했더라면, 스트릭 프리즈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어려운 문제를 미루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풀었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그동안 정들었던 백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이었다.
돌아보며

처음엔 브론즈 문제도 못 풀었다. 간단한 입출력부터 시작해서 복잡한 알고리즘까지. 그게 어느 순간 실버가 됐고, 골드가 됐고, 플래티넘이 됐다. 이제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아니어도, 웬만한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직감이 생겼다. 그게 가장 큰 성과인 것 같다. 추가로 코딩 테스트는 개발 스펙과 상관없이 무조건 C++을 선택하는 특이한 이력까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면접에서 알고리즘 문제 풀이에 대한 질문도 종종 받았는데, 그 중 한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알고리즘 문제 풀이의 장점이 뭔가요?”
개발이 축구라면 PS는 달리기라고 생각합니다. 달리기를 잘한다고 축구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기를 잘하는 것은 분명 축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백준에서의 시작은 걸음마였다. 그 걸음마가 어느 순간 달리기가 됐고, 이제는 필드이서 축구를 하고 있다. 걸음마부터 시작했던 그 달리기 없이는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백준이 나를 개발자로 만든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오래 함께해 준 곳은 맞다. 막막할 때 열 수 있는 창이 있다는 것, 오늘 한 문제라도 맞았다는 피드백이 있다는 것, 그게 생각보다 오래 나를 붙잡아 뒀다.
이제 그 창은 닫혔지만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16년간 백준을 운영해 오신 최백준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